fnctId=bbs,fnctNo=3723 RSS 2.0 총 9 개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게시글 리스트 양림동의 가을 가을이 깊어지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 2년 여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의 기세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면서 여행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부담이 적지 않다. 이럴 때 기분전환 겸 군산이나 목포 또는 여수나 전주 같은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을 다녀오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그도 아니라면 차라리 광주를 여행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광주는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도시 구석구석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적지 않다. 특히 단풍이 자신의 색을 찾아갈 때쯤에는 남구의 양림동에 가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 낙후된 동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의 몇 안 되는 장소, 골목이 살아있는 곳. 모두 양림동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아마도 양림동의 매력 중 하나는 독특한 풍경일 것이다. 좁은 골목과 낮은 담이 이어져 있는 양림동은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인 광주의 다른 곳에 비하면 걷는 내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사직공원을 올라가면 잘 가꾼 숲이 있어서 맑은 공기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양림의 장점이다. 또 높은 곳에 올라가면 광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양림동은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했던 터전이어서 광주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어느 한적한 골목길을 돌아 들어갈 때면 100년 전 누군가도 이 골목을 서성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꺾어진 골목에서 그 시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때론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가 밀정에 쫓겨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장면도 떠올려 본다. 눈이 내리는 어느 쓸쓸한 겨울 밤 가로등 밑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는 식구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양림동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이러한 상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양림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길은 어느새 어릴 적 잠깐 살았던 기억 속 외할머니의 집으로 이어지고 다시 또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 달음박질 해간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놀던 그 골목길, 도시와는 다른 따듯한 흙빛 돌담이 코밑이 하얀 애들을 보듬어 안아주던 모습이 잠깐 동안 기억을 스쳐간다. 그런 점에서 양림동의 진짜 모습은 호랑가시나무 부근에 있는 선교사 사택들에서 시작해 호남신학대학 선교사 묘역까지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이야 이곳이 유명해져 카페와 음식점들이 대거 들어서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양림동이 이처럼 재조명 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이 머물다 간 흔적 때문일 것이다. 늘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번잡한 동네가 되었지만 양림동의 속살은 광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양림에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소박한 것과 화려한 것, 우리의 것과 외래의 것이 공존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그 널브러진 조각들을 누비고 잇는 경험은 양림동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다. 광주의 숨은 이야기와 장소를 찾아다니는 30대 워킹맘 - 신송 작성일 2022.12.12 작성자 관리자 조회 18 이해 없는 사회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 무운을 빌게. 면접을 앞둔 친한 동생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묻는 답이었다. 당황했다. 아주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쓴 말인데 모르다니! 그날 나의 일화는 최근에 한 이슈를 떠오르게 했다.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이 통상적인 공지 문구에 심심해서 사과한다는 거야? ,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등의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항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심심(甚深)하다 는 표현을 일부 사람들이 지루하다 라는 의미로 해석해 항의 댓글을 단 것이다. 이는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 인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OECD 조사 결과까지 거론하며 실질 문맹인 이라는 표현으로 디지털 세대의 낮은 문해력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논란이 올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에는 명징 과 직조 , 2020년에는 사흘 , 2021년에는 금일 과 무운 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논란이 이어져 심심한 이라는 현재에 이른 것이다. 몇 차례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느낀 사람들은 곧바로 응수했다. 요즘 애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일까? 사실 SNS의 등장으로 문해력을 염려하는 연구는 많으나, 우리나라 청년 문해력이 정말로 문제인지를 조사한 결과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또한 2018년에 실시된 국제성인역량조사에 따르면 16세 이상 65세 이하 한국의 성인 문해력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정도에 해당하며, 요즘 애들 인 16~24세 청년의 문해력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생각해보면 장년층보다 고등교육률이 높은 요즘 애들이 문해력이 낮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통계자료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해력 점수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자료는 매년 불거지는 문해력 논란이 단순히 특정 세대의 문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느 세대이건 낯설게 여겨지는 어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자어, 신조어처럼 세대 간 어휘력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논란 이후 반응에 있다. 왜 그런 어려운 단어를 써서 헷갈리게 해요? 문해력 논란에 일부는 이렇게 반응했다. 이 논쟁의 맹점은 낯선 말을 접했을 때 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타인과의 대화에서 누구나 한 번쯤 모르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말을 한 것이 잘못 이라는 식의 태도로는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이는 아직도 한자어를 사용하고 강요하는 것이 꼰대 라고 말하는 것과 무식한 요즘 애 들이라 말하는 것 모두 해당한다. 소통은 이해가 필요하다. 심심한 이라는 말이 기계적인 사과일지는 몰라도 지루한 사과 는 아닐 것이라고 이해하고 무슨 뜻인지 찾아보는 노력이 선행 되었더라면,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해가 있었더라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이렇게 이분법적 사고와 태도로 이해보다는 적대와 조롱으로 맞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와 태도는 소통이 아닌 공격일 뿐이며, 실질적인 논쟁의 해결보다는 또 다른 논쟁을 만들 뿐이다. 우리가 심심한 논쟁을 통해서 깨우쳐야 할 점은 요즘 애들의 문해력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서로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요즘 사회 문제로 떠오른 문해력 을 개선하여 높이는 출발점이 아닐까! 더 설명할 필요 없는, 그냥 - 문다은 작성일 2022.09.28 작성자 관리자 조회 15 타인에 대한 기대감과 당연함의 사이에 대하여 사람은 나 자신과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기대를 하고 이를 은연히 드러낸다. 자신 스스로 미래에 대해 기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은 동기부여의 원천이 되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활력이 된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내가 아닌 남에게 발현되고 그 기대감이 이내 실망으로 바뀌면 타인에게 짜증을 내고 심지어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인간관계의 절연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내게 가끔 푸념하곤 한다. 이때 나는 항공기의 Redundant fail-safe 라는 설계 개념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 Fail-safe는 항공기의 구성품이 망가지는 경우(fail) 똑같은 구성품을 하나 더 탑재하여 항공기가 비행 중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safe) 하는 설계개념이다. 이 설계개념을 통해 항공기를 타는 조종사와 승객은 고장이 나더라도 안심하고 비행을 할 수 있게 한다. 뜬금없이 항공기의 설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에게 같은 개념을 적용해 생각해보면, 상대와의 관계에서 그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fail) 정상적으로 내 몸과 마음이 작동할 수 있도록 미리 또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 놓는 방법(safe)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내가 부사수에게 내일 오전까지 어떠한 작업을 끝마치라고 이야기했는데 부사수가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면 나는 화가 나 추궁을 할 것이고 그런 반응은 결국 부사수뿐만 아니라 나도 기분이 상하게 될 것이다. 이때 Fail-safe의 개념을 내 마음에 적용해보자. 부사수에게 작업을 끝마치라고 이야기했을 때 처음부터 부사수가 일을 못 할 수도 있음을 고려했다면,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 "그럴 수 있지", "바빠서 못 했나 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고 결국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갈등이 기대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기대감, 직장 상사의 직원에 대한 기대감 등 수많은 타인에 대한 요구가 우리의 화를 돋운다. 이럴 때 그 기대감이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고 나의 기대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대부분의 갈등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자들은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 성인들이나 할 이야기라며 평가 절하한다. 그러나 이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상대방도 인간이며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안 하거나 못 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간다면 타인에게 당연함을 벗어나 남과의 관계에서 상처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항공정비를 전공하고 항공사에 근무하였음. 코로나로 인해 접힌 날개가 다시 펼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 - 전승재 작성일 2021.08.17 작성자 관리자 조회 11 어린이에 대한 예의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는 나이지리아 속담이 있다. 이는 양육에 있어서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차원의 협력과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4차 산업 혁명이라 불릴 만큼 눈부신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는 현재, 대체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인식의 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11월, 한 초등학생이 하쿠나 라이브 라는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여 스마트폰으로 무려 1억 3000만 원 가량의 금액을 결제한 일이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핸드폰을 이용하여 다이아몬드 라고 불리는 현금 아이템을 결제하여 BJ에게 쏘았다. 스마트폰은 어머니의 통장과 연동되어 있었고 그렇게 일가족의 전셋집 이사를 위해 모아둔 보증금은 순식간에 빠져나가게 되었다. 상황을 파악한 아버지는 하쿠나 라이브를 비롯하여 구글 본사, 카카오페이 등 관련 기관에 긴급히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 정책에 의해 환불이 불가능하다 라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후원금을 받은 BJ의 SNS를 통해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일일이 환불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그러나 한 BJ는 후원금 4,000만 원을 이미 사용하여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이에 응하지 않았고 하쿠나 라이브 측은 본 거래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후원금 전액을 환불하기로 했다.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한들,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을 심적인 고통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방송을 접하게 되었다. BJ가 고액 후원자를 회장님 으로 대우해 주는 것을 보았고 존경하는 BJ의 회장님 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문에는 회사 측의 부적절한 대응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이 압도적이었으나 부모 고생을 모른다. , 금전거래의 무서움을 깨달았을 테니 비싼 교육이라고 생각해라. 등 아이의 책임을 묻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응보적 논리를 적용하기에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아이니까 철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선망하는 집단에 속하길 바라는 것은 어른도 뿌리치기 어려운 욕망이지 않은가. 아이는 며칠간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못했다. 아이가 앞으로 사람과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교훈으로 삼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경험이다. 우리는 11살 아이가 10일에 걸쳐 1억 3,000만 원을 결제하는 동안 이 거래를 통제할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련의 양상과 다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명의를 이용해 막대한 금액을 결제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상업적인 매체에 쉽게 노출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이러한 결제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데다, 오히려 부모의 관리 책임으로 귀결되기 쉬운 까닭에 실제로 금액을 환불받기 매우 어렵다. 가파른 변화 속에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더 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철없이 자라야 한다. 아이가 철없이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은 철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철없는 어른들의 일에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말자. 그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가장 기초적인 예의(禮誼)다. 2021년에는 희망찬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시민 - 장금민 작성일 2021.02.01 작성자 관리자 조회 12 차를 권하는 도시 염주사거리에 약속이 있던 나는 서구 동천동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다. 한 번에 가는 차가 없어 광천 터미널에 가서 환승을 해야 한다. 그래서 터미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광판 알림에 의하면 10분 남았다. 지금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반, 퇴근길 차 막힘이 극심한 시간, 버스는 제 시간에 올 생각을 않는다. 이윽고 만원버스에 옹기종기 콩나물처럼 끼어 타면 터미널까지 도착하는 데 빠르면 10분 늦으면 15분 쯤 걸린다. 겨우겨우 환승카드를 찍고 내렸더니 환승해야할 버스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다시 버스를 15분 기다려서 만원버스에 콩나물처럼 끼어 타고 20분 걸려 긴 여정을 마무리 하게 됐다. 서구에서 서구를 이동하는데 걷는 시간 포함 한 시간이 걸렸다. 순전히 걸어서 가도 한 시간 반 밖에 안 걸리는 곳을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아, 차가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개개인의 불편함을 나열하자면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정책은 지속적으로 대중교통을 장려하지만 애써 만든 지하철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을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남대학교를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면 결국은 내려서 환승을 해야 한다. 버스 또한 노선이 적어 환승을 꼭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의 원인은 비단 노선 문제만은 아니다. 자가용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차가 막히게 되고, 버스는 그 차들 틈에 껴서 옴짝달싹하게 된다. 그러면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같은 거리라도 이동시간은 길어진다.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차를 구매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이 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만들었다. 그렇게 차가 많아져버린 광주는 지금 자동차 과포화 상태이다. 거리엔 갓길주차가 비일비재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차가 수두룩하다. 이는 골목길 교통사고로도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 내가 사는 동네로 예를 들면 상가와 아파트단지 사이의 왕복2차로에 갓길주차가 많아 횡단하는 사람들이 위협을 받는데, 광주광역시는 갓길주차를 막을 수 없으니 사람을 막았다.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난간을 설치해 자유로운 횡단을 막고 도로 중간 중간에 횡단보도를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장치일까? 사람을 보호하는 것일까? 아니면 차를 보호하는 것일까? 인도, 자전거도로, 횡단보도 모두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동차의 편의에 기준을 두고 만들었다. 도시가 사람들에게 차를 사라고 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흔히들 서울은 차 없어도 광주는 차 없으면 못 산다 는 말을 심심찮게 한다. 요새는 한 가정에 차가 두 대 있는 집이 대부분이며 세 대 있는 집도 드물지 않다. 심한 경우에는 인원수대로 차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한 명이 두 대 이상의 차를 보유한 경우도 더러 있다. 차가 없으면 생활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자동차 수는 점점 더 악순환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으로부터 구제해줄 거라 믿고 산 자동차가 결국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가속화시키고 그로인해 또 차는 늘어만 간다. 장마철 강물 불 듯 늘어난 자동차를 위한 도로와 시스템 개편 때문에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아니꼬우면 차를 사든가 식의 분위기는 우리가 차를 권하는 도시 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도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시민-류제영 작성일 2020.12.14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 내아이의 안전한 세상 우리집 4살짜리 아들은 내가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나 잠깐의 외출도 같이 가야 하는 그야말로 엄마 껌딱지 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코 앞에 위치한 곳에 분리수거 및 볼 일을 보기위해 현관문을 나서려는 찰나,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음을 깨닫고 잠깐 집으로 들어간 사이에 4층에 도착한 엘레베이터를 아들 녀석은 자연스레 탑승했고, 내가 탑승하기도 전에 문이 닫히자 이녀석의 울음은 온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아뿔싸! 4층이었기 망정이지, 보다 높은 곳에 살았더라면 따라가기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부리나케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1층까지 내려가는 그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1층에 도착했을 땐 늘상 마주치는 이웃 할머님께서 아들 녀석에게 말을 걸어주고 계셨고 아들은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하며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놀랐을 아이를 안아주며 진정시키는데, 이녀석의 첫마디는 엄마, 미안해요. 였다. 직감적으로 본인도 자신의 잘못이라 느꼈을 터. 어느 정도의 말귀를 알아먹었을 무렵부터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 것, 엄마 없이는 낯선 곳에 가지말 것, 위험에 처했을 땐 경찰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시시때때로 일러주곤 한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 뉴스에선 조두순의 출소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의 출소에 불안감을 느낀 피해자의 인터뷰에선 맘 같아선 그를 피해 이사를 가고 싶으나 여건이 그렇질 못하다고 했던 것을 접했을 땐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찰나였지만 잠깐의 상황에서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데, 실로 그 아픔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어찌 다 형언할 수 있을까. N번방사건, 아동학대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각종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아이들.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배움에 정진하고 그에 발맞추어 꿈이라는 걸 온전하게 꿀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세상이 제도적, 법적으로나마 안전함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면 사실 불신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넓은 세상으로 이끌기보다 전전긍긍하며 점점 작은 울타리에서 간신히 아이를 보호해 나가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적어도 해를 끼치지 않고 배움을 줄 수 있는 가치있는 어른이 되고자 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러한 갈망은 더욱 커졌는데, 실로 우리 아이가 자라는 세상은 좀 더 안전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육에 있어서 안전한 보호는 부모에게 요구되는 것이겠지만 어떠한 사건 사고를 겪었을 때 그 문제를 부모의 부주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법 강구나 사후 엄정한 처벌 등과 같은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바다에서 아이와 뛰놀며 육아하는 30대 주부-이미나 작성일 2020.10.19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 화려한 도시의 사라진 뒷골목 광주라는 도시가 어색하게 느껴졌던 때가 기억났다. 분명히 그리 좋은 일자리도 없고 대기업이 많은 도시가 아닌데 왜 이렇게 돈쓰는 곳이 많을까. 화려하게 꾸민 가게들이나 프랜차이즈가 왜 이렇게 많을까. 상무지구나 수완지구는 밤에 어떻게 저렇게 불야성일까. 소비도시로서의 광주에는 어딜 봐도 돈을 벌 곳이 눈에 띄지 않는데 자꾸만 돈을 쓸 곳만 넘쳐난다. 보이지 않는 어떤 곳이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광주에 3000개의 성매매 업소가 있다고 하고, 한 업소당 10명의 여성 노동자가 근무한다고 해보자. 그들이 하루에 10만원을 번다고 한다면, 하루에 3,000,000,000, 즉 30억이라는 돈이 성매매업소로 들어간다. 1달에 900억이다. BTS는 2019년 6월 투어로 1달간 940억원을 벌었다고 하고, 2014년 출시되어 돌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 2015년 연매출이 900억원 정도였다. 광주의 지하에서 매월 BTS가 글로벌 투어를 하고 있다고 하면 광주의 이 겉모습이 약간 이해가 된다. 광주의 화려한 겉모습을 보여주는 중심가로는 충장로, 금남로(황금동, 장동)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 윗동네에는 요즘 핫플(핫플레이스) 인 동명동 그리고 지산동이 있다. 내가 다니던 중, 고등학교는 지산동에 위치했고 그 근처에는 광주지방법원이 있었다. 지산동에는 여러 개의 중, 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가 있다. 지방법원을 기준으로 그 앞으로 내려가다 보면 지산사거리가 나오고, 지산사거리를 넘어가면 동명동과 광주 시내가 나온다. 지방법원 뒤로 넘어가면 지산동 주거지역과 동산초등학교가 있고, 계속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무등산으로 갈 수 있다. 무등산자락에는 신양파크호텔, 무등파크호텔과 지산유원지가 위치한다. 그런데 법원 뒤쪽 지산동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떤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너무나 동네가 스산하다는 것이다. 특히 동산아파트 부근의 구역은 집다운 집이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원룸, 빌라들이 즐비하고 상점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과연 이 동네에서 사람이 살긴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나무를 길게 세운 무당집, 점집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 동네 더 너머로 올라가면 낯부끄러운 포스터(지금도 기억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들을 붙여놓은 전면 유리로 된 업소들이 있었다. 지금은 예쁘게 꾸민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그 업소들의 흔적은 남아있다. 나는 등굣길에 그 길을 지나는 버스를 타면서 지겹게도 그 풍경들을 보았다. 어쩌면 저런 곳이 차가 다니는 길가에 있을까하고 생각했고 저 가게가 언제쯤 없어질까 궁금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도록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거리는 절대 내 발로 걷고 싶지 않은 거리였다. 화려한 도시와 뒷골목이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쌍이었지만, 지금은 좀 더 달라진 것 같다. 뒷골목은 사라지고 도시는 점점 더 밝혀지고 있다. 업소 들은 도시공간 대신 인터넷 공간에서 더욱 밝은 불빛을 밝히거나, 혹은 길 걷는 행인의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 뒷골목 없는, 구석구석 환하게 빛나는 도시를 찍는 일은 그래서 간혹 위험한 일이 된다. 도시에서 길을 걷다 사진을 찰칵, 찍으면, 익명이었던 사람들은 갑자기 여기를 의식하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진다. 도시를 풍경처럼 지나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던지는 약간 불쾌한 듯, 혹은 언짢은 듯한 눈길에는 도시의 화려한 환상을 그저 환상인 채로 놓아두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주임 (시민기고자): 업무중인 30대 작성일 2020.09.28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 냉정과 정사이 나는 종종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그날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편리한 서비스에 감사하며 버스에 탑승했다. 하지만 그날 버스에서 생긴 일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면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코로나 19이후 버스탑승은 좀 더 복잡해졌고 탑승예약은 필수며 탑승 전 예약확인에 발열체크 그리고 마스크 착용 확인까지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긴 시간의 절차 때문에 늦어질까 걱정했지만 버스는 정시에 학교에서 출발했다. 버스가 학교를 빠져나와 시내도로를 타기 시작했고 나는 평소처럼 잠을 청해보려 눈을 감았다. 한 오 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잠시 멈추는 느낌을 받았지만 교통체증이라 생각하고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가도 버스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느껴져 눈을 떴는데 버스가 한쪽 길가에 정차해 있었다. 무슨 일이지? 고장이 났나? 아무런 안내도 없이 10여분이 지나고 있었고 버스는 여전히 출발하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기사님께 여쭈러 일어서려는데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한 중년의 남성분이 탑승을 했다. 서류봉투하나를 건네면서 어디어디에 전해달라는 말을 전하더니 버스에서 내려 사라졌다. 심지어 그분은 마스크로 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뭐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서류봉투하나를 전달받으려 30여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간을 10여분 이상 앗아가 버리고는 그 어떤 안내나 사과의 말 한마디 하지 않다니 불쾌감이 들었다. 더욱이 버스는 도착시간을 맞추려는 듯 평소보다 과속을 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늦어진 이유에 대한 사과를 받지도 못하고 과속하는 버스로 인해 안전을 보상받지 못해야하는 불편함만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에서 난 그 어떤 제기도 그 누구도 불평하나 없었다. 왜 우리는 따지지 못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이런 불합리성에 관대한 것인가 관대해진 것인가? 인정 많은 나라의 국민이라서? 정 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나라의 언어로도 한단어로 번역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이다. 논리적인 설명보단 감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정 문화이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내게도 자리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내 스스로도 어른들의 일에 따지고 든다는 것은 너무 냉정하고 버릇없는 젊은이라 비춰질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정 을 둘러싼 이런 감정들이 요구하는 이해 가 불필요한 시간의 소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0여분의 시간을 낭비해야하며 그로인해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과속을 하는 버스 안에서의 불안전성과 혹 그로 인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감정적 이해에서 벗어나 공과 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고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태나 상황을 바라보고 행동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사적인 관계에서 정의 중요성을 살피는 만큼이나 공적인 관계의 합리성을 위해 냉정함을 장착해야 한다. 여기서 냉정은 상대나 상황에 대한 배려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합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냉정은 공적인 일에 관계되는 중요한 감정으로 공동체의 안전과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합리적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강민지 (시민기고자):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전 잠시 휴학중인 관광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4학년생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관리자 조회 14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보호자의 존재 창녕 아동의 4층 빌라 탈출 사건, 계모가 트렁크에 7시간 동안 아동을 가둬 놓고 외출해 아동이 사망한 사건은 TV 속 이야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 이야기이다. 이러한 보도에 수많은 사람들은 학대를 가한 부모에 대해 분노하고, 학대를 당한 아동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댓글로 나열한다. 물론 더 잔혹하고 더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은 요즘 사회이지만, 더 많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이 사건들의 범죄 구성 요건의 중심에 바로 누구나 언제나 마주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 아동의 보호 의무의 이행에 대한 사건 결과의 책임은 별개로 두고,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관계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현상과 관련 맺어짐을 의미한다. 관련성을 갖는 대다수의 모든 관계는 목적과 방향성을 갖는 수평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 구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수직적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할지, 서양의 개인주의를 근거로 수평적인 관계로 살펴보아야 할지는 각 가족의 개별적 상황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이냐를 관계에서 일괄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등이 많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빠 없는 가정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고 또는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우기 싫어서 라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아직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역할자의 부재라는 측면보다는 수직적 관계에서의 역할자의 자리 지킴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인 것 같다. 수직적 관계 안에서의 가족은 보호하는 자와 보호 받는 자의 위치가 고정된다. 이에 보호의 명분 안에서 보호하는 자의 어떠한 가학도 발생할 수 있고, 보호를 받는 자는 학대마저도 보호의 방법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학대의 정도가 수용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바로 가족의 문제가 사회의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이럴 때 매번 드는 의문은 보호하는 자는 학대를 가해서라도 훈육하였다고 말하고 또 보호 받는 자는 학대를 받아가면서도 보호자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모든 사회 문제나 범죄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권을 갖는다. 미성년자도 국민의 일원으로 사회가 특별히 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법과 제도 안에서 보호받는 방법은 문제 발생 전보다 발생 후에 이뤄지기 쉽다. 발생 후의 회복 방법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인식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닐까 한다. 미성년자의 보호자는 미성년의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 특별한 보호 의무와 책임 의무를 갖는 자이다. 자녀는 양육의 대상자이지만, 결코 자녀를 내 소유의 종속물로 생각해서는 위험한 것이다.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 가정에서의 학습과 생활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떤 모습의 보호자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본다. 혹시 성인으로 나아가는 준비의 시간을 갖고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나의 소유물이나 종속물에 가깝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한 마리 새가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기 전까지 우리는 보호자에 가깝나? 소유자에 가깝나? 박아현 (시민기고자) 작성일 2020.07.21 작성자 관리자 조회 11 처음 11 1 끝